한국에서는 연상호 감독의 <염력>이 엄청나게 망해버린 이후, 초능력이나 이 능력을 사용하여 악에 대항하려고 하는 미국식의 히어로들이 좀처럼 캐릭터로 등장하지 않고 있다. 옆 나라 일본에서조차 <귀멸의 칼날>과 <주술회전>으로 대표되는 이  초능력물이 매년 수십 개씩 쏟아진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히어로물 부재는 다소 독특하게 보인다. 한국이 원래 판타지나 SF의 약세 국가이지만 히어로물이 거의 없다는 점은 특이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에는 히어로물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굉장히 많다. 우리에게는 할리우드식 히어로물과 같이 공권력을 대신하여 악당과 싸우는 히어로가 없다. 대신 검사나 경찰, 판사, 변호사, 조폭과 같은 사람들이 "악당"인 공권력과 맞서 싸우는 히어로들이 많다.

미국과 한국의 히어로물들을 비교해 보면, 두 국가의 인문,사회 환경이 뚜렷하게 구분되어서 재미있다. 히어로물은 보통 국가가 위기 상황에 닥칠 때 많이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 시점을 보자면 미국은 9.11 사태였고 우리는 최순실 사태였다. 9.11 테러는 공권력의 상실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를 상징하는 사건이지만, 최순실 사태는 공권력으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따라서 그 이후 만들어진 "히어로물"의 성격도 판이하게 달랐다.

히어로물은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와, 그런 가치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의 슈퍼히어로물은 일종의 존 포드식 서부영화이다. 미국은 중앙집권제적인 권력이 약하고 연방 주의 권력이 강력한 국가이다. 더군다나 나라가 넓고 치안이 안 좋아서 공권력이 닿지 않는 곳도 많다. 이는 서부 개척 시대 당시 공권력의 공백으로 인해 각종 범죄가 판치던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서부 개척 시대에 말 타고 총을 쏘면서 도적떼들을 소탕하던 보안관들의 이미지를 21세기 현재 경찰과 정부가 아무것도 못하는 혼란의 도시에 나타나 악당들을 쓸어버리는 슈퍼히어로가 이어받은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미국의 슈퍼 히어로물은 미국 대도시 경찰들의 무능함과 상대적으로 약한 공권력, 그에 비해 강력한 범죄 조직들의 힘 등이 만들어낸 문화적 현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미국식 히어로의 기원이 도적떼를 총으로 쏴대는 서부 개척시대 보안관들이었다면 한국식 히어로의 기원이 되는 사람들은 정반대로 보안관(포졸, 공권력)들을 총으로 쏴대는 도적떼(장길산, 홍길동, 전우치, 임꺽정)이었다. 이것은 몇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우리 한국 사회는 조선 시대 때부터 국가 주관의 시험을 통해 관료를 뽑고, 정확한 세율 체제를 갖춘 강력한 중앙집권제의 국가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조직적인 도적떼가 등장하기 어려웠고 오히려 민중들을 제일 많이 괴롭힌 것은 법률을 빌미로 세금을 마구 수탈해대는 지방 관청, 즉 공권력과, 조선을 침략하여 백성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해댄 중국이나 일본 등 외부 세력들이었다.

2009년 개봉한 전우치는 최초의 한국형 히어로무비라고 포스터에서 광고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권력을 대신하여 시민들을 지킬 미국식 히어로가 필요 없었다. 오히려 공권력으로부터 시민들을 지키는 히어로라는 굉장히 기묘한 캐릭터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래도 조선시대 때까지는 외세라는, 탐욕스러운 공권력에 버금가는 최악의 적이 건재했기에 <박씨전>과 같은 보다 "미국적"인 히어로가 존재했지만,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진입하면서 이런 경향은 거의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제국주의 시대를 통해 우리는 외세 세력과 부패 공권력이 하나로 합쳐진 일제강점기를 겪었고 그 이후로도 소련이나 중국, 미국과 같이 한국을 통해 한탕 해먹으려는 외부 세력을 여러 번 경험하였다. 이런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는 민중들이 점차적으로 적의 정의를 "공권력이 약할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이 강하고 부패하고 부정의할수록 많아지는 것"이라고 여기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전우치나 홍길동, 임꺽정과 같은 캐릭터들을 시초로 부패한 탐관오리들을 청산하고 백성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나눠주는 한국형 히어로들의 원형을 만들어냈다. 이후 사회가 점차 관료주의적이고 법치주의적으로 변함에 따라 한국의 히어로들은 그런 도적떼들 이외에도 권력을 역이용하여 더 큰 악과 권력을 벌하는 모습을 띄기도 하였다. 물론 현대에도 조폭물과 같은, 보다 전통적인 의미의 한국적 히어로들은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검사나 경찰, 판사, 정치인, 의사와 같은 법률과 정의로운 방법을 토대로 악을 심판하려는 등장인물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가 더 많이 보인다.

이런 경향은 사회적이나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내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지만 우리는 소위 히어로적인 정치를 지향함에 따라 상대편을 무조건적인 악이자, 청산하고 구속시켜버려야 할 죄인으로 보게 되었다. 이재명이 전봉준이라면 국민의힘은 탐관오리들이고, 윤석열이 이몽룡이라면 더불어민주당은 변 사또라는 이런 식의 의식이 너무 팽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 사회가 점차적으로 좌우 대립이 극심한 나라로 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이 어려워질수록 그런 어려운 삶의 근원이 되는, 악한 공권력을 벌할 히어로를 찾게 된다. 그에 따라 상대편 공권력은 청산해야 할 악으로 여겨지게 되고, 끝없는 좌우 대립의 소용돌이가 몰아닥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검사물, 경찰물 등 각종 한국식 히어로물을 청산하는 것에서 좌우 대립의 해결을 시작해야 한다. 단순한 선악구도, 내 편이 아니라면 전부 악이라는 장길산과 전우치의 정신이 한국의 사회를 망치고 있다. 그저 "사이다"만을 노린, 선악 구도가 명백한 양산형 히어로물이 쏟아지는 이 시대에 있어서 좌우 대립 청산을 위해 필요한 첫 번째 시도는 그러한 것들을 타파하려는 문화적 노력이어야 한다.

이것은 사족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히어로물은 일본의 히어로물에 비해 어느 정도 진일보한 면이 있다고 본다. 일본 애니에 대한 개인적인 호오와 별개로 말하자면,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히어로들은 서민이나 약자 계층의 의지를 대변하고 있는 한국의 판검사 캐릭터들과 달리 이렇다 할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의 히어로물에는 주인공도 적도 대변하는 사회적인 가치가 없다. 단지 적과 히어로가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나 <귀멸의 칼날>과 같은 작품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그 특성상, 선악 구도를 다루는 히어로물보다는 개인의 정서를 다루는 "사소설"과 같은 애니메이션이 더 어울려 보이고 실제로 그쪽이 훨씬 더 흥미롭고 재밌다(귀멸의 칼날이 재미없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경향은 일본 사회가 개인적인 가치는 굉장히 소중히 여기고 있지만, 그런 개인적인 정서가 너무 강한 나머지 자신들의 공동체가 바라는 가치가 무엇인지 고찰할 오락적인 기회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한국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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